선의 반대도 어쩌면 악이라기 보다는 무사유, 무비판 일지 모른다.
우린 사실 아이히만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를 악의 화신으로 생각하고 있다.
히틀러의 측근에서 히틀러를 만들어낸 한 사람으로...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 재판을 참관하면서 쓴 기사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칸트와 하이데거를 정치사상적으로 살려낸다는 그녀가
그나마 대중을 위해 쓴 글이라고 한다.
물론 그녀의 다른 글보다는 훨씬 쉬워졌지만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아이히만에는 도저히 닿을 수가 없다.
이렇게 어렵게 글쓰는 독일 풍의 사람들이 참 싫지만
어쩌겠는가...
이들이 최고인 것을...
그녀가 유대인이란 것은 참 재미있는 사실이다.
대량학살과 그 가해자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도 쉽지 않지만
그 접근들이 구조적으로 짜임새를 갖추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녀의 아이히만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은
피고인의 권리, 재판과정, 언론 등 너무나 다양한 각도에서 느껴볼 수 있다.
그녀의 뜻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녀의 접근을 조금이나마 느껴본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상주의라는 측면에서 아이히만과 시온주의를 동급으로 올려놓다니...
그녀는 남들이 모두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도 갖고 있었다.
그의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의 유일한 특징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사유 sheer thoughtlessness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부당한 권력에 대한 반대와 극복이 없기 때문
그녀의 이러한 분석이 있었기에 후에 스탠리밀그램의 심리학 실험도 나타난 것이 아닐까?
여튼 그녀의 분석 중 한두개 예를 보면,
잔혹한 행위에 대하여 평범한 어감의 용어를 사용한 것을 강조했고,
사실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순종했던 것도 악의 발현을 쉽게 했다는 투였다.
이는 유대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공포의 조건 아래에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에게 해당된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은 누구인가??
선입견을 없애고 그의 말을 들어볼 수 있도록 혐의에 대한 '부정'으로 책은 시작한다.
자신이 한 일은 인류 역사에 대해서는 가장 큰 범죄들 중 하나이지만 현행법에 대해서는 무죄?
그저 법적절차에 어긋나지않는 국가의(총통의) 명령대로였을 뿐 '유대인을 죽이는 것'과는 무관?
학업과 직업에 있어서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무기력한 상황에서 힘러의 보안대 (친위대 제국지휘관 소속)는
그의 재능?을 발굴?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최종 계급은 중령,
1942년 1월 베를린 근처 반제에서 열린 그 "반제회의"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계급이다.
이날 나치 고위관리들이 모여 결정한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학살)'에 필요한 계획과 병참업무 준비의 책임을
아이히만이 맡게 된 것이다.

여튼 그는 시오니즘에 지지를 보냈으며, 그에게는 유대인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폴란드에서 자행된 유대인에 대한 총살 등을 보고 독일 정부에 탄원하기도 했다.
final solution 이전의 유대인 이주 정책에 있어서는
자신의 행정적 수완을 통해 유대인의 이익을 가능한 한 보장해 주었다고 한다.
어쩌면 실제 유대인 중 그를 변호할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차 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군인들이 로봇처럼 모든 명령에 반드시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UN ‘집단살해에 관한 협약’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개인이 도덕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책임을 부여하는 것.
출처: 1962년 5월 31일 -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처형
군인일지라도 최소한의 비판의 칼날은 필요하다.
우리 개개인들은 더더욱 비판의 칼날을 세워야 한다.
그 칼날이 무뎌질수록 세상에 악이 나타나기 때문에...
하지만 그 칼날은 한나 아렌트의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하여 더욱 날카로워야 한다.
또한 나와 다른 입장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나와 입장이 다른 판사를 비판하고 싶다하여
헌정질서를 무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타인에 대한) 무사유을 드러내는 것일 뿐...
아렌트만큼의 사유를 기대할 수야 없겠지만...
검찰, 법원, 사법부를 바로 세우려면...
올바른 비판이 있어야 할텐데...
비판의 탈을 쓴 타인에 대한 무사유...
아렌트는 정치의 영역을 시민들이 저마다 인격을 걸고 의견을 표출하여 경쟁하는 장으로 여겼다. 그 정치 공간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는 훈련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이상적인 공론장이다. 그런 정치의 장이 마련되고 강화할 때 아이히만과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것은 우리가 언제든 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말한다.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
출처: 우리 안에 아이히만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